4.은사는 개인적인 것인가요,공동체적인 것인가요?

고린도후서 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로마서 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질문합니다
1.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은사는 왜 다양하게 주어지나요?
3. 은사에도 서열이 있나요?
생각해봅시다
어떤 종류의 은사이든지 은사를 받게 되면 우리는 우선 놀랍니 다. 은사를 체험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은사가 주어졌는지, 어떻게 이 은사를 사용해야 할지, 그리고 은사의 목적과 용도에 대해 고심하게 됩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로 개인적인 부분도 있고 공동체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분리되지 않고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위해 은사에 대한 성격을 살펴봅시다.
은사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아주 다양하지만, 은사를 주시는 성령은 한 분이십니다.(고전 12:4-) 한 분 성령의 임재에 따라 다양한 은사가 나타납니다. 은사의 모양이 여러 가지이기에 우리의은사 체험도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성령의 은사를 기도와 감성을 통해서 체험되는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는 단지 인간의 특정한 부분으로만 체험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감성뿐만 아니라, 이성과 인식의 깨달음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때로는 선포되는 설교를 통해서, 성 경을 읽다가, 혹은 대화 가운데서도 성령이 함께할 수 있고 은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위해, 공의를 위해, 역사 속에서 우리의 삶을 헌신할 때, 또 바른 성경 이해를 위해 신학적 통찰에 힘을 쏟을 때 언제라도 성령께서 함께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의 삶이 우리에게 좋은 본이 됩니다. 그들이 바른 성경 해석을 위해 기도하고, 잘못된 교리를 바로잡기 위해 투쟁하며, 교회의 참된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전 실존을 다해 노력 하는 이 모든 행위 속에 성령께서 함께했습니다. 교부들이나 위대한 신학자들이 이단들과 싸우며 좋은 교리를 제정하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자 할 때에도 성령이 함께하였습니다.
구약성경에서도 다양하게 임하는 성령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 같은 탁월한 솜씨(출 35:30~35), 여호수아 같은 지도력, 요셉과 다니엘의 꿈 해몽, 솔로몬의 지혜, 삼손의 놀라 운 힘, 그 외 많은 선지자들의 역사가 은사로 나타났습니다. 신약에서도 의, 소망, 기쁨, 사랑 등의 은사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다양한 은사 곧 병 고침, 예언, 능력 행함, 지혜의 말씀, 방언, 방언 통역 등도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좋고 나쁨의 차이나, 높고 낮음의 서열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마술적 신비함을 드러내려는 재미로 나타나는 것 아닙니다. 또한 한 개인의 만족이나 영광을 위해 나타나는 것 도 아닙니다. 은사가 나타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성령 사역의 도구로서 인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은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성령의 사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은사를 받은 사람은 교회 공동체를 위하고 이웃을 섬기며 성경의 바른 정신을 실천합니다.
성령으로부터 나타나는 은사는 개인적인 유익과 공동체적인 유익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은사를 체험하게 되면 개인적으로는 더욱 더 신앙이 확고해지고 실제 생활에서도 성숙한 기독교인으로 살아 갑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은사는 개인적인 유익이 있습니다. 따라서 은사는 '성화'(sanctification)와 연관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은사는 한 개인으로서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은사를 통해 교회 공동체를 섬기고 타인을 섬기게 됨으로써 공동체의 유익을 도모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는 데도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라고 불립니다. 교회 공동체와 자신의 신앙적 유익을 배제한 무분별한 은사 활동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위험인 행동입니다. 사랑과 섬김이 빠진 진리는 진리가 아니듯(요일 3:18~19)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사를 받은 신자들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담당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갑니다.(고전 12:25-27) 가시적인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매개하는 소중한 공동체임에는 틀림없으나 성령의 능력 안에 있을 때에만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이고 공동체입니다.
은사는 다양하지만 성령은 한 분이십니다.(고전 12:4) 다양한 은사의 최종적인 방향은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섬기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면에서 은사는 개인적인 측면과 공동체적인 측면이 서로 연결되어 개인의 성화와 아울러 공동체의 성숙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화와 성결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참여하게 됩니다.
대화합시다
질문1 어떤 은사를 달라고 선택적으로 구할 수 있나요?
답변 : 은사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편에서 “저는 이러이러한 은사가 필요합니다.”라며 특정 은사를 지목해서 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은사는 개인의 만족과 필요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선물이기에 성령의 전적인 주권으로 주어집니다. 간혹 “어떤 은사를 지목해서 구했더니 하나님께서 주시더라.”는 간증을 듣는 경우가 있는데, 특수한 경우 인간이 하나님이 구해서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모든 은사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질문2 방언의 은사를 성령을 받은 표시로 볼 수 있나요?
답변 : 성령이 임재하면 방언이 나타날 수도 있고, 방언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방언을 성령 임재나 성령 세례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질문3 영성 훈련이라는 것을 통해서도 은사를 받을 수 있나요?
답변 : 성령의 은사가 어떤 방법으로 언제 임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 은사를 겸허히 감사함으로 받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성 훈련 중에 성경 읽기나 기도를 하는 과정에서 은사가 주어졌다면, 그것은 성령의 주권에 의한 것 이지 프로그램이나 훈련 때문에 은사가 주어진 것은 아닙니 다. 단지, 경건과 성화의 삶을 위해 여러 가지 신앙 훈련을 하 는 것은 권할 일이며, 이런 차원에서 영성 훈련을 이해한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묵상해봅시다.
1.
나에게 어떤 은사가 있는지 북상해 봅시다.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은사는 없는
지기도 가운데 북상합시다.(고전 12:12-31)
2.
구약과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은사를 책임 있게 잘 사용한 사람과 그렇
지 못한 사람을 알아봅시다.
은사를 책임 있게 사용한 사람들
은사를 잘못 사용한 사람들
3. 내게 주신 은사를 어떻게 사용할지 구체적인 방향을 적어 봅시다.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교회 공동체를 위해
사회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