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29-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 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고린도후서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린도전서 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질문합니다
1.
인간은 죽음 이후에 영혼만 하늘나라로 가는 것인가요?
2.
죽음 이후에 인간은 완전히 멸절하는 것인가요?
3.
복제인간도 우리와 동일한 인간으로 볼 수 있나요?
생각해봅시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죽음 이후에 인간이 어떤 형태로 존재할 것인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기독교인은 하늘나라와 영생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듣습니다. 막연하게, 죽으면 인간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 가고 영혼은 하늘로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 다. 하지만 '영혼이 하늘로 간다.'는 말은 쉬운 말이 아니며, 죽음 이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죽음 이후의 인간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혼과 육체의 개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기독교가 영혼과 육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지 살펴봅시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종교와 철학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금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사는가,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여러 종교와 철학은 다양한 답변을 시도했습니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질문이 많이 있고 인간에 대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영혼과 육체라는 용어가 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히브리 개념에서는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고, 인간을 통합적인 개념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인간을 다양하게 묘사하는데, 그중에 영혼과 육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마 10:28, 벤저 2:11 등)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인간을 영과 육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신약 기자들도 당시에 흔히 사용되던 용어로 인간에 대해 설명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인간을 영혼과 육체라는 두 실체(reality)로 나누는 이원론적 사고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당시 그리스로마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인간'을 설명할 때 '영’과 ‘육'이라는 두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용이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의 본질 적인 측면을 '영'이라고 말하고, 인간이 가진 보다 약한 측면을 '육'이 라고 표현했습니다. 성경에서 영혼이라고 말할 때 영혼은 썩어 없어 지지 않는 그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는 결코 완전히 없어 지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것을 '영혼'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로 오면서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나누는 이원론적 사고는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영적인 측면과 육체적 측면이 완전히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 영향 속에 있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육체적으로 아프거나 나약하면 영적으로도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영적으로 피로하고 지치면 육체가 힘들고 약해집니다. 인간의 영과 육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영향 속에 있습니다. 즉 인간은 영과 육이 합쳐지면 하나의 통전적인 인격체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지금은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전인격적이고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더 강합니다.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이지요. 이처럼 시대에 따라 인간을 이해하는 다양한 용어와 방법이 있었습니다. 인간을 묘사하고 설명하기 위해 어떤 용어나 개념을 절대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 본다면, 인간이 죽어 '영혼만 하늘로 간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인간이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고 무(無)로 돌아가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죽음의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지고 완전히 멸절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전인적으로 이해한다고 해서 인간이 무로 돌아가는 것으로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살았던 그 사람의 동질성' (identity)과 '인격성'(personality)은 어떤 형태로든 남게 됩니다. 예를 들면, 홍길동'이라는 인간의 고유한 동질성과 인격성이 하나님에게 간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신약성경이 묘사한 없어지지 않는 '영혼'을 '인격성'이나 그 인격의 동질성'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다만 인간을 영과 육이라는 이원론적으로 이해하던 것을 전인적으로 보면 됩니다.
인간의 동질성이나 인격성이 어떤 형태로 남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자세히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각인격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억 속에 남게 되고, 또한 부활의 형태로 남는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더 구체적인 논의는 여기서 다 할 수 없고, 신학적으로 많은 지면이 필요합니다. 다만 우리는 죽음을 영혼과 육체의 분리라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은 전인이 죽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전인이 하나님 앞에 다시 서게 되고, 영광의 부활체로 거듭납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고전 15:35)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9)
대화합시다
질문1. 과학 기술의 발달로 복제인간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는데 복제인간에게도 일반 사람처럼 사후의 세계가 있나요?
답변 : 아직 복제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질문에 명확히 답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만약 복제 인간이 보통 인간과 같은 '인격'을 가진 생명체라면, 그에게도 똑같이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복제인간도 하나의 생명체로서 고유의 인격성과 자기 동질성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전인적 이해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질문2 부활 때에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일어난다는 성경의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요?
답변 : 무덤은 인간의 죽음, 즉 인간의 최종적인 절망과 끝을 의미합니다. 부활 때에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일어난다는 의미는 사망과 어둠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따라 모든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것을 말합니다. 즉 더 이상 인간의 마지막이 무덤이 아닌 생명과 부활의 은혜 안에 거하게 될 것임을 보여주는 '희망의 선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질문3. 죽은 자들이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의 방법 안에 존재한다면 그들과의 교제는 가능한가요?
답변 : 초대교회 때는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접신이나 미신적 행위와 같은 인위적인 형태의 방법을 통한 죽은 자들과의 교제를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죽은자와의 직접적인 교류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으며, 우리는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법으로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안에서, 즉 모든 죽은 자와 산 자의 하나님 안에서 동일한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눅20:38)
묵상해봅시다
1.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2.
신앙으로 죽음의 힘과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는 의미를 묵상해 봅시다. (고전 15:55)
3.
부활에 대한 소망을 자신이 속한 교회 부서의 성도들과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