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5:17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질문합니다
1. 복음의 시대에 율법이 필요한가요?
2. 기독교의 복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인데. 하나님은 왜 율법을 주셨나요?
3. 율법과 복음은 서로 다른 개념이라고 배웠는데 어떻게 율법과 복음이 조화될 수 있나요?
생각해봅시다
개신교 신자라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율법이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집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독교에는 언제나 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흐름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이 경향이 심하게 발전되어 반율법주의(antinomianism)가 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초기의 대표적 이단인 마르키온(Marcion)은 예수님이 전한 복음이 구약의 율법을 완전히 폐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성경을 재편집하면서 구약성경을 제외하였고 율법과 연속성을 가진 일부 신약성경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이처럼 복음 안에서 율법의 기능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기독교 주변에는 늘 있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조합니다. 복음은 다른 말로 하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복음에 대한 강조와 은혜에 대한 강조는 비슷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개신교의 출발이 되는 종교개혁의 3대 표어 중 하나가 '오직 은혜(Sola gratia)입니다. 성경의 중요한 핵심도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선포입니다. 하지만 은혜는 항상 율법과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하나를 독립적으로 분리하여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율법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율법은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율법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율법은 결코 잘못된 규례가 아닙니다. 율법 자체는 선합니다. 다만 인간이 이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게 되면서, 율법은 죄와 잘못을 고발하는 것으로 인간과 맞서는 구조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두려운 것, 강제적인 것, 규제하는 것, 피하고 싶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율법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 7:7)
다음으로, 복음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해주기 때문에 복음이고, 은혜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므로 은혜입니다. 은혜는 인간의 행위나 노력의 대가가 아닙니다. 인간이 자신의 구원에 대해 전적으로 무능한 것을 알게 되고 이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 본 사람은 '은혜로 말미아 살리라.'는 말씀을 실감하게 됩니다.(롬 3:24, 고전 15:10)
복음과 율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복음을 깨달았다고 해서 율법이 필요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깨닫게 되면 두려움을 갖고 율법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새롭게 다가가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 안에 있으면 이제 율법은 인간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는 복음 안에서 율법을 새롭게 받아들입니다. 칼뱅(J. Calvin)은 이것을 율법의 제3사용'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신자는 더는 율법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신자가 성화의 길을 걸어가며 하나씩 이루어나가는 항목이 됩니다. 그래서 칼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율법이 신자들에게 선을 행하도록 끊임없이 가르치고 권고하며, 신자들에게 의무를 알려주어 성화로 나아가게 하는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율법도 은혜입니다. 율법을 통해 인간이 죄를 깨닫고 은혜를 알게 되지만 이 말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통해 죄를 알게 되는 것 자체가 은혜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없으면 은혜도 없습니다. 바로 율법 자체가 은혜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엄밀하게 말하면 율법-은혜의 순서가 아니고, 은혜 - 율법의 순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자에게 율법과 은혜는 분리되지 않고 항상 같이 이해되고 같이 체험됩니다.
셋째, 우리의 신앙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율법이 아닌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는 율법을 형식화하거나,율법의 정신을 벗어나 인간적 기준에 따라 고정시킬때 나타납니다.원래 율법은 아름답고 사람을 살리는 말씀이었으나,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굳어진 규례로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율법의 원래 정신을 잃어버리면 율법주의가 되어 버립니다.예수님은 율법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반대한 것은 율법주의였습니다. 우리는 율법의 원래 정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올바르게 이해해야 하며, 결코 율법주의적인 신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율법주의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 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대화합시다
질문1 율법을 완전하게 지킴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나요?
답변 : 물론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선하며 그것을 온전히 지킨다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인간은 더 이상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에 이르는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오히려 선을 행하려 할수록 악을 행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더욱 자신의 한계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로 7:18~19)
질문2 율법을 강조하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변 : 은혜만을 강조하거나 또는 율법만을 강조하는 편향된 가르침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은혜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기독교의 구원을 값싼 은혜'로 만들거나, 율법만을 강조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닌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율법을 보아야 합니다. 죄책감은 율법을 통해 의를 얻고자 하거나, 신앙으로 자기 만족을 얻고자 할 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신의 한계를 보고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신앙의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묵상해봅시다.
1.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
2.
율법이나 복음(은혜)에 대해 어느 하나만 일방적으로 강조할 때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살펴봅시다.
교회가 율법만을 강조할 때 나타나는 '율법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교회가 복음만을 강조할 때, 어떤 형태로 '값싼 은혜'가 나타나는지 생각해 보세요.
3.
당신은 율법과 복음 중 어디에 더 많은 강조점을 두었나요? 그로 인해 당신의 신앙적 태도는 어떠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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