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 : 54-55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질문합니다.
1.
기독교인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슬퍼해도 되나요? 혹시 불신앙적인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을까요?
2.
죽음은 모든 사람이 맞이하는 공통된 경험인데,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요?
3.
전생과 환생에 관한 이야기를 매스컴에서나 일반적인 대화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데 기독교인의 죽음과는 무엇이 다른가요?
생각해봅시다
죽음은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죽음에 따른 고통과 슬픔은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고통과 슬픔은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생명으로부터 분리, 혹은 가족과 사랑하는 이로부터 홀로 떨어져 나가는 것이기에 모든 사람에게 매우 두렵고 고통스럽게 다가옵니다. 결코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두려움이 덜하거나, 비기독교인이라고 해서 고통이 더 크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감출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에서,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에서처럼 기독교인들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마음껏 슬퍼해도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이 경험하는 보편적인 죽음이 가져다 주는 슬픔과 고통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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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죽음
( 창 50 : 1 )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아버지의 얼굴에 엎드려 입 맞추며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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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죽음
삼하 18 : 33
아들 압살롬이 죽자 다윗은 "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하고 심히 울며 통곡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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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죽음
창 23 : 2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죽자, 아내를 잃은 슬픔을 참지 못해 빈소에 들어가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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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죽음
요11:32
오빠 나사로가 죽자, 마리아는 형제를 잃은 아픔에 매우 슬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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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죽음
삼하 1:12
다윗은 자신의 친구인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죽게 되자,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며 해가 질 때까지 울며 금식했습니다.
예수님도 나사로의 죽음을 보시고 고통과 슬픔을 표현하셨습니다. 죽음 앞에서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가지고 신앙과 불신앙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것은 결코 죄가 되거나 불신앙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죽음에 대한 고통과 슬픔은 모든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애써 슬픔을 참거나 감추려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 죽음 앞에서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비기독교인과는 달리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기독교인은 죽은이 모든 생명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음이 끝이라는 죽음관은 인간을 허무와 절망에 빠뜨리기도 하며, 죽음을 피하려는 인간적인 노력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기독교인은 죽음 속에서 십자가의 고난 가운데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의 산 소망을 바라보기에 죽음이 가져다 주는 모든 고통과 절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산 소망은 죽음의 반복을 말하는 윤회관이나,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영혼불멸론관는 다릅니다. 기독교인의 부활은 지금의 이 모습과는 다른 차원인 영광의 몸을 입는 것입니다. 부활 후의 몸은 부활 전의 몸과는 다른 것이며 썩지 아니할 몸,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가 이뤄지는 영광의 몸이 될 것입니다.우리는 부활의 영광스런 모습이 어떠한지 모두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믿고 바라는 것은 우리의 가진 바 부활의 산 소망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약속하신 부활을 믿음으로써 오히려 현재를 소망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에게 죽음은 더는 두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소망의 '쏘는 것'이 빠져버린 죽음은 부활의 산 소망을 향한 과정이며 새로운 시작입니다.
미래의 부활은 죽음의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요, 희망입니다. 미래에 다가올 부활의 산 소망은 결코 현재와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산 소망은 미래를 희망하며 지금 우리가 당하는 시련과 좌절을 이기며 나아갈 수 있는 역동적인 힘이 됩니다. 바로 그 순간 미래의 부활은 현재 나의 삶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우리를 둘러싼 죽음은 모든 힘을 잃게 됩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십자가의 승리를 통해 죽음이 극복되고 부활의 산 소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면, 이제 자신의 죽음을 좀더 직시하고 정면으로 맞이하는 준비와 훈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약하지만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주님의 은총을 힘입어 죽음을 바라보고, 각자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생애가 되어야 합니다.
대화합시다
질문1 기독교인도 죽음을 두려워하나요?
답변 : 당연히 모든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기독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부활의 소망으로 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입니다.
질문2. 불신자 친구나 가족이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 신자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답변 :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신자일 경우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에 별 문제가 없지만, 불신자인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매우 난처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나 불신자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한 불신자의 구원을 좌우할 수는 없지만, 동일한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품에 죽은 자를 부탁 드리는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묵상해 봅시다
1.
이제까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를 적어보고, 질병이나 사고 또는 자연사로 인한 죽음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
2.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적어 봅시다.
(가족과의 관계, 지나온 시간, 앞으로 맞이할 시간, 소유, 신앙관계등)
3.
다가오는 죽음의 현재적 경험 안에서 부활의 산 소망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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