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린도전서 12:8-11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 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 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 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질문합니다
1. 구약 시대에도 성령이 있었나요?
2. 성령은 시대마다 다르게 역사하나요?
3. 영성 훈련을 통해 성령을 경험할 수 있나요?
생각해봅시다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대부분 성령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교회에서도 성령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합니다. 주변의 교인들로부터 성령 체험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가 워낙 다양하게 나타나다 보니 무엇이 성령의 사역인지 분간하지 못 해서 어려움을 겪는 수가 많습니다. 성령에 대한 의문은 다양합니 다. 그중에서 오늘은 초대교회 시대의 성령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가 체험하는 성령의 역사와 같은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초대교회 시대의 성령의 역사와 요즘의 성령의 역사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령의 역 사가 요즘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가 시대에 따라 다르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구약은 성부 시대, 신약은 예수 시대, 그 후는 성령이 역사하는 시대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시대적으로 구분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의 부류도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기 때문에 성령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초대교회 때에 기적이 가장 많았고, 성령의 역사가 강했다고 강조합니다. 이런 강력한 성령의 역사는 초대교회에서만 나타난 성령의 독특한 역사라는 것 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초대교회와 같은 강력한 성경이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때에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행 2:1-13, 43, 3:1-10, 4:31, 5:12, 6:10, 7:55, 8:47 29, 9:32-42, 10:44-45, 11:15, 13:52, 19:6 등) 물론 시대에 따라 성령의 역사가 더 강하게 나타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고난의 시대 에는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는 근본적으로는 모두 동일합니다. 다만 각 시대와 상황에 가장 적 절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초대교회 때는 박해의 시대였고, 순교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당시에는 그 시대에 맞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구약의 시대에 맞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신약의 시대에는 신약의 시대에 맞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즉 성령의 역사는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성령이 시대마다 표현되는 특징이 다르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다른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주도 한 분이시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엡 4:44,고전 12:11) 시대에 따라 '다른' 성령이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성령의 역사가 다른 형태로 강조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우리가 성령이 역사를 더 잘 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이 있을 때 더 잘 깨달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를 어떤 신앙의 눈으로 보느냐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초대교회의 성령의 역사가 요즘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는 성령을 영성개발과 연관해서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초대교회 시대에는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지만, 요즘은 그렇게 강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최근에 유행처럼 나타나는 영성 훈련 프로그램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복잡 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현대인들은 다양한 형태의 명상이나 요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불안한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는 것이죠. 교인들도 기독교로부터 마 음의 안식과 안정을 얻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것에 영향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영성 훈련원이나 수도원 형태의 기도원을 찾아가 영성 수련이나 명상을 통해 마음의 안식을 얻으려는 시도를 많이 합니다.
영성 수련이나 마음의 평안을 위해 기독교 관련 피정 프로그램을 시도하거나, 혹은 수도원에서 쉬면서 안식을 얻는 것은 좋은 일 입니다. 다만 일부 수련원이나 영성 훈련 프로그램에서 시도하는 인간의 내적 개발과 명상 훈련을 성령의 역사로 간주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기독교 단체의 이런 프로그램 중에는 일반 명상치료나 요가의 명상 훈련과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이 런 영성 개발이나 인간의 내적 훈련을 성령의 역사와 연결시킵니다.
그러다 보니 현대의 교인들 중에는 성령의 역사를 영성 훈련이나 명상의 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강한 성령의 역사와 요즘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가 다르다고 생각 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를 영성 훈련이나 명상과 혼동행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인간이 개발하거나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 영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성령의 역사를 특정한 은사와 연관해서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령을 방언, 예언, 병을 고치느 영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물론 방언이나 치유 은사는 중요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성령을 어떤 특정한 은사에만 연결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성령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방언이나 치유와 같이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성령 역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게 하는 영입니다. 초대교회의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통해 제자 들의 삶이 얼마나 달려졌는지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새롭게 고백하고 두려움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행 3:12-26, 4:8-21, 5:27-42) 유대인들의 박해가 두려워 다락방에 숨어 지내던 제자들이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선포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생명, 정의, 평화, 사랑의 새로운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을 바로 고백하게 되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나라들 향해 헌신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의 본질이며 목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은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역사하셨던 성령께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동일하게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세례와 성찬에 참여할 때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고백하고, 생명과 정의, 평화, 사랑의 새로운 공동체가 일어나는 곳에 성령은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할 때 우리를 지치지 않게 하고 용기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시대에 나타난 어떤 현상들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다른 성령이 역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 역사의 주체는 성령 자신입니다. 성령은 매우 분명한 목적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은사는 인간이 영성을 훈련하듯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고 요청할 수 있지만, 성령의 역사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좌우되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기도와 간청을 듣지만 그 자신이 주체로서 역사합니다. 성령께서는 이루고자 하시며 완성해 가시는 목적에 따라 자신의 역사를 드러내시고, 인도해 가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방향과 목적을 완성해 가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다양한 역사를 통해 교회를 이끄시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이루어 가시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계십니다. 교회와 신자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목적 안에서 성령의 뜻에 순종하며 응답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부르십니다. 때로는 어둠의 힘이 우리를 억누르고 우리의 미래에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여도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신 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은 지금도 탄식하시며, 온 피조물과 함께 신음하며 이 역사와 함께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라.”(롬 8:20)
대화합시다
질문1 성령의 역사를 구해도 되나요?
답변 : 우리가 살면서 지치고 힘들 때 생명의 영이고 위로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를 구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는 것도 바람직한 신앙의 태도입니 다. 다만 신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이나 갈망을 위해 성령 의 역사를 간구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의 태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질문2 성령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주체이시라면 인간은 성령의 역 사에 수동적인가요?
답변 : 성령은 빈 공간에서 역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은 피조 세계와 인간과 함께 역사하십니다. 성령이 이 역사를 이끌어 갈 때 인간은 응답을 통해 성령의 역사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에 인간이 수동적이라고 의미를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질문3 동일한 성령으로부터 은사와 직무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변 : 이 질문은 몇 가지 관점에서 답변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성령의 역사 자체가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의 도구됨의 다양성 때문입니다. 주도 한 분이시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하지만 성령 역사의 도구가 되는 인간과 피조물의 다양성으로 인해 은사와 직무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묵상해봅시다
1.
성령의 역사를 얼마나 바르게 이해하고 신앙생활을 했는지 묵상해 봅시다.
2.
성령 하나님을 나 개인의 목적에 따라 이용하려고 한 적은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3.
성령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이 사회와 나라와 민족 앞에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교인들과 토의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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