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6: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로마서 12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질문합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2.
은혜로 구원받는다면 인간은 아무런 책임성이 없나요?
3.
작고 보잘것없는 능력으로도 이웃과 사회와 역사를 향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생각해봅시다
개신교를 탄생시킨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 종교개혁가들의 3대 표어 중의 하나가 '오직 은혜'였습니다. 그 후 개신교 교회는 언제나 '은혜'를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은혜는 일상적인 단어가 되었고, 기독교인은 누구나 은혜를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은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은혜와 인간의 노력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 모호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책임과 노력을 가치 있게 만들 수도 있고 무가치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인간의 책임과 반대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에 비해 인간의 노력은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만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요청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으며, 자신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요청만 하면된다는 신앙의 태도는 하나님을 '도깨비 방망이'로 보는 것입니다. 이때 은혜는 구하기만 하면 주어지는 '값싼 은혜'가 되고 맙니다.
은혜는 그런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진정 값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그 누구보다 강조했던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뱅과 같은 신앙의 인물 가운데 은혜를 값싸게 얻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전 실존을 걸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은혜는 진정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곳에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그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혜는 인간의 노력을 무가치하게 만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은혜는 결코 인간의 노력을 무가치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아직 은혜를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소명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소명에 따른 책임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할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책임과 소명'을 알게 된 사람은 결코 방관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는 이웃과 사회와 역사를 향해 나아갑니다. 이때 인간의 책임은 단지 신앙적 의무로서가 아닌 기쁨으로 은혜에 응답하는 '순종'이며 '신앙의 행위'인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모두 이러한 신앙의 단계를 거쳤습니다. 개인적인 체험과 신앙의 형태에는 차이가 있어도, 한 개인이 신앙의 상태에 도달하는 과정은 아래와 같은 단계를 가집니다.
첫째는, 인간의 노력과 함께 은혜를 체험하는 단계입니다. 루터는 무릎으로 기도탑의 계단을 오르며 하나님을 만나려는 열정을 불태운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긴 인내와 갈망의 시간 끝에서 '탑의 경험'이라는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려는 열정 속에서 인간적인 고통과 좌절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아무런 열정 없이, 그냥 은혜를 기다리는 것은 결코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둘째는, 책임과 소명을 실천하는 단계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 그 은혜에 대한 응답이 나타납니다. 은혜에 대한 응답이 바로 '소명'입니다.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소명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기쁨과 자발적 순종으로 나아갑니다. 여기에 바로 기독교인의 책임성이 있습니다. 은혜 속으로 들어간 신자는 말씀에 대한 소명이라는 책임성을 가집니다. 이 소명은 의무와 무거운 책무가 아니라 말씀을 향한 즐거운 응답으로 나타납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노력마저도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단계입니다. 자신의 노력과 열정이었다고 생각한 그 모든 행위가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고백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신앙인들 가운데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결코 은혜는 인간의 노력을 무가치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인간의 노력과 열정은 은혜를 만나기 위한 하나님의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이후에는 인간의 노력과 수고는 그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서 소명으로 승화됩니다.
대화합시다.
질문1.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어떤 책임과 소명을 가지나요?
답변 : 은혜로 구원받은 기독교인은 더는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해 살게 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좇아 생명을 사랑하고 이웃을 용서하며 평화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때 세상의 가치관과 충돌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며, 주를 따르는 삶은 고난과 희생을 수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독교인의 소명과 책임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마침내 이 땅에 임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질 때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내게 될 것입니다.
질문2.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주님을 따르다가 어느 순간 진리를 향한 열정이 사라지고 신앙이 무의미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 우리는 주님을 따르다가 어느 순간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진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혹은 신앙적으로 공허하고 낙심하여 힘든 시간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진리를 향한 열정이 사라지고 무기력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때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시간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방황의 순간마저도 주의 은혜임을 깨닫게 되며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질문3. 저는 기독교인으로서 보잘것 없는 능력을 가졌는데도 신앙인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답변 :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는 매우 다양합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누구나 큰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큰 능력이 없어도 나에게 주어진 분량의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능력이 '크다'거나'작다'는 구별은 세상적인 기준일 뿐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작지만 자신의 것을 나누며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세상적으로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내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3:8)
묵상해봅시다
1.
하나님의 은혜애 대해 묵상해 봅시다.
2.
하나님의 은혜와 신앙 공동체에 주어진 책임과 소명을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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